[새만금 게이트①] 설계부터 엉터리… 사람 숨졌는데 발주~설계~시공사 모두 '떠넘기기'
  • 2015년 10월 새만금 공사현장에서 인부 1명이 추락해 숨졌다. '부실시공' 때문으로 결론나면서 당시 현장소장을 비롯해 하청업체 대표 등 관련자들은 형사처벌을 받았다.

    단순 사고로 결론나면서 세상에서 잊혀졌던 이 사건이, 3년이 지나서 논란이 되고 있다. 하청업체 대표가 공사 과정 전반이 "불법 투성이였다"고 주장하면서다. 이 공사의 현장 관리감독은 한국농어촌공사가 맡았다. 시공사는 삼부토건이었다.

    <뉴데일리>는 약 2주일 간 '문제'의 새만금 공사현장을 취재했다. 그 결과 사망사고를 단순히 '부실 공사' 때문이었다고 치부하기엔 석연찮은 부분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설계부터 인·허가 등 공정 전반에 걸쳐 만연한 위법하거나 비상식적인 행정절차를 파악한 것이다. 불법과 비상식으로 얼룩진 새만금 공사현장의 '검은' 내막을 연속 보도한다. <편집자주>
  • 한국농어촌공사 전경.ⓒ뉴시스
    ▲ 한국농어촌공사 전경.ⓒ뉴시스
    2015년 10월 12일 정오께 전북 군산시 새만금 공사현장(새만금지구 방수제 만경3공구). 지면으로부터 약 10m 위에 설치된 상판 슬래브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던 인부 김모(당시 61세)씨 등 3명이 추락했다.

    김씨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고, 다른 인부 2명은 크게 다쳤다. 사고는 슬래브를 지지하던 강관 상부가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찢어져, 슬래브가 붕괴되는 바람에 일어났다.

    사고 현장은 한국농어촌공사(이하 농어촌공사)가 발주한 공사. 당시 준공을 불과 2개월가량 남겨둔 상황에서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시공사는 도급 순위(2018년 7월말 기준) 59위인 삼부토건이었다.

    1000억원 규모 대형 공사… "사고 원인은 설계상 문제"

    농어촌공사가 2009년 말 긴급 공고한 '시설공사 입찰공고'에 따르면 '새만금지구 방수제 만경3공구' 공사는 전북 군산시⋅김제시⋅부안군 일대에 방수제 4450m, 교량 2개소, 배수문 1개소, 승수로 3034m 등을 건설하는 공사로, 설계⋅시공 일괄입찰(턴키⋅Turn-key) 방식으로 진행됐다. 

    총 공사금액은 950억원 규모로, 공사기간은 2010년 7월부터 2015년 12월 31일까지, 약 5년 6개월간이었다. 농어촌공사는 2010년 7월 삼부토건과 계약을 체결했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이 사건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부실 자재 사용과 함께 '설계상 문제'를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전북지방법원 군산지원은 2016년 12월,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현장소장 정모(당시 53세)씨와 하청업체 대표 이모(당시 56세)씨, 하청업체 직원 이모(당시 51세)씨 등 3명의 선고공판에서 "공사과정에서 안전조치를 철저하게 하지 않았고 설계도면에 맞는 강관기둥을 제작하지 않았다"면서 "이 사건 구조물의 설계상 문제가 이 사건 붕괴 사고의 원인 중 하나"라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정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직원 이씨와 대표 이씨에겐 각각 금고 1년 6월과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시공사 삼부토건은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안전조치 미흡, 불량 자재 사용 등은 붕괴 사고의 통상적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재판부가 설계상 문제를 지적한 대목이었다.

  • 2015년 10월 12일 사망사고가 발생한 새만금 공사현장 모습. 슬래브가 찢어져 철근이 너덜거리고 있다.ⓒ독자 제공
    ▲ 2015년 10월 12일 사망사고가 발생한 새만금 공사현장 모습. 슬래브가 찢어져 철근이 너덜거리고 있다.ⓒ독자 제공
    현행법 무시한 부실 설계도면으로 시공

    이 사건으로 처벌을 받았던 하청업체 대표 이모씨는 "강관이 규격에 맞지 않게 제조된 탓이라기보다 설계 자체가 부실해 발생한 사고"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판결문에는 '설계상 문제'에 대해 자세히 언급돼 있지 않았다. 이씨의 주장은 사실일까. 

    본지가 취재한 내용을 종합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고가 발생한 공사의 설계도면은 현행 법을 준수하지 않고 제작된 '부실 설계도면'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사망사고는 농어촌공사와 시공사의 불법적 행태에 따른 '인재(人災)'였던 셈이 된다.

    '인재'를 거론한 근거는 크게 △설계도면 형식 △설계도면 처리 절차 △설계도면 자체의 부실성 등 세가지에 대한 의혹이다. 전문가들은 우선 설계도면 형식부터 '위법적' 요소가 있어 '정상적' 설계도면으로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현행 건축법(제19조 제3항)은 "설계도서를 작성한 설계자는 당해 설계가 건축법 및 건축법의 규정에 의한 명령이나 처분 기타 관계법령의 규정에 적합하게 작성되었는지를 확인한 후 그 설계도서에 서명날인해야 한다"고 규정해 놓았다.

    건축사법 제21조는 "건축사는 건축물에 관한 설계를 한 때에는 그 설계도서에 서명날인해야 하고, 설계도서의 일부를 변경한 경우에도 또한 서명날인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설계도서 작성자의 동일성을 표시하고 책임을 분명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설계도면에 시공사, 설계회사, 설계자 서명날인 없어

    하지만 본지가 입수한 문제의 새만금공사 설계도면에는 설계자의 서명(도장)날인이 없었다. 도면은 한눈에 보기에도 정부부처가 발주한 '정상적' 설계도면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실제 정부인천지방합동청사 신축공사 설계도면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확연하다. 정부인천지방합동청사 신축공사 설계도면에는 발주처(정부청사관리소)·시공사(고려개발)·설계회사(범건축)가 뚜렷하게 명기돼 있다. 반면 농어촌공사의 설계도면에는 발주처만 있을 뿐 시공사, 설계회사, 설계자의 도장날인이 모두 빠져 있었다.

    설계도면에 설계자의 도장날인이 없다는 사실은 공사를 발주하고 현장 관리감독 책임을 맡은 농어촌공사도 인정했다. 농어촌공사 새만금사업단 실무 관계자는 "시공사인 삼부토건에서 납품한 도면에는 설계자들의 서명만 있다"면서 "도장날인은 없다"고 시인했다. 그는 도장날인이나 시공사, 설계사 등이 없는 이유에 대해 "설계회사 측에 문의해달라"며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설계를 담당했던 E건축사사무소 측 답변 역시 모호했다. E건축사사무소 측은 "설계를 한 것은 맞다"면서도 "현재 당시 근무했던 직원들이 모두 퇴사해 내용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 농어촌공사의 새만금 공사현장 설계도면(왼쪽)과 정부청사관리소가 발주한 공사의 설계도면(오른쪽). 농어촌공사의 설계도면에는 설계사무소, 서명날인(도장) 등이 없다.ⓒ제보자 제공
    ▲ 농어촌공사의 새만금 공사현장 설계도면(왼쪽)과 정부청사관리소가 발주한 공사의 설계도면(오른쪽). 농어촌공사의 설계도면에는 설계사무소, 서명날인(도장) 등이 없다.ⓒ제보자 제공

    도장날인, 시공사, 설계사가 모두 누락돼 있는 설계도면이 있을 수 있는 것일까? 한 건축설계사는 '세움터'에 신고됐을 경우엔 도장날인이 빠질 수도 있다고 했다. 세움터는 건축행정업무의 전산화 시스템으로, 2008년 6월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건축·주택·건축물대장·사업자 업무 등을 전산화해 민원인이 관공서를 방문하지 않고, 행정업무를 볼 수 있는 편의성 때문에 대부분의 설계사들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농어촌공사에 이를 물었다. "세움터 신고로 인한 도장날인 미기재냐"는 질문에 농어촌공사는 "새만금 공사현장 부지는 공유수면 지역으로 현재 별도의 지번과 지목이 없어 세움터 신고를 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러니까 건축행정전산시스템인 세움터 신고에 따른 도장날인 미기재도 아니라는 것이다. 

    업계 전문가는 "세움터 신고대상이 아니라면 더더욱 각 도면별로 설계자의 도장날인이 있어야 한다"며 "농어촌공사의 행태가 일반적 상식선에선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일종의 제안서가 준공도면으로 쓰여… 전문가들 "비상식적"

    다른 의문점도 있다. 이 설계도면의 행정처리 절차이다. 사고가 발생한 설계도면은 입찰과정에서 시공사가 제출한 계획도면(일종의 '제안서' 개념)이다. 문제는 이 계획도면이 설계(실시)도면이 됐고, 이후 준공도면으로 사용됐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취재에 응한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장기 공사의 경우 사소한 설계변경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제안서' 개념의 계획도면이 준공도면으로 승인을 받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토목이나 건축의 경우 장기 공사를 진행하다 보면 조그마한 설계변경은 다반사"라며 "계획도면이 준공도면으로 승인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행정관청의 건축허가 담당자도 "절대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공사를 하다보면 상황에 따라 사소한 설계변경이 있다"며 "계획도면이 준공도면이 되는 경우는 드문 케이스"라고 했다.

    이에 대해 농어촌공사 측은 "설계도면이 문제가 없다면 그대로 가는 것"이라며 "설계심의를 거쳐 확정된 부분이라서 위법한 사항은 아니다"고 답했다.

  • 계획도면으로 만든 조감도(사진 위)와 완공된 새만금 전망대(사진 아래). 위 사진에는 기둥(붉은선)이 없으나 완공된 사진에는 기둥 2개(붉은선)가 세워져 있다.ⓒ제보자 제공
    ▲ 계획도면으로 만든 조감도(사진 위)와 완공된 새만금 전망대(사진 아래). 위 사진에는 기둥(붉은선)이 없으나 완공된 사진에는 기둥 2개(붉은선)가 세워져 있다.ⓒ제보자 제공
    농어촌공사, "설계 부실하다"는 하청업체 의견 묵살

    그런데 이 설계도면 자체가 부실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하청업체 대표 이모씨와 이 공사에 참여했던 김모씨 등에 따르면, 사고가 난 상판 슬래브 공사현장에는 두가지 문제가 있었다. 다이아후램(기둥 연결부 주위 보강대)이 없었다는 점과, 7m가량 튀어나온 캔틸레버를 받치는 기둥이 없었다는 2가지다.

    캔틸레버(cantilever)는 한쪽 끝이 고정돼 있고 다른쪽 끝은 받쳐지지 않은 상태로 되어 있는 보이다. 외관은 경쾌하나 같은 길이의 보통 보에 비해 4배의 휨 모멘트를 받아 변형되기 쉽다 따라서 강도설계(强度設計)에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주로 건물의 처마끝, 현관의 차양, 발코니 등에 많이 사용된다.

    실제 현장 설계도면을 확인해보니 캔틸레버의 길이는 7m가량으로, 이를 뒷받침할 기둥은 없었다. 캔틸레버를 지탱할 기존 기둥 주위에도 어떠한 보강대는 없었다. 이는 사고 당시 사진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하청업체 대표 이씨는 "다이아후램만 있었어도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사고 이후 캔틸레버를 떠받치는 기둥을 세웠는데, 이는 결국 최초 설계가 잘못됐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씨는 "공사과정에서 이 문제가 발견돼서 다행"이라면서 "전망대는 수많은 관람객들이  찾는 장소인데, 준공 이후에 이런 사고가 일어났다면 그야말로 세월호보다 더 끔찍한 사고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당시 공사현장에서 설계가 이상하다는 점을 삼부토건과 농어촌공사 측에 이야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씨는 "구조물 설계공사만 40년 넘게 하고 있다"면서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붕괴 위험을 농어촌공사 측과 삼부토건 측에 수차례 이야기했으나, 그냥 설계대로 하라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의문을 농어촌공사에 물었다. 공사는 "시공사인 삼부토건 측에 문의하라"며 답을 피했다. 삼부토건 측은 수차례 연락을 하고 문자메시지를 남겼지만 응답을 하지 않았다. 취재과정에서 알게 된 일이지만, 이것은 커다란 부실의 시작에 불과했다. <2편에 계속>